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바라보면서 흥행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실제 역사 및 장소에 대한 관심이 함께 높아지고 있는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핵심적인 역사적 인물의 뒷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역사이기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도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
단종
조선 제 6대 왕인 동시에 12세의 이른 나이에 즉위한 왕으로 세종대왕의 손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문종인 즉위 2년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으며 결국 어린 아들만 남기고 가게 됩니다. 당시 성종, 중종의 시대처럼 왕권이 완정된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즉위 직후 실질적으로는 김종서, 황보인등의 대신들의 힘이 상당했으며 왕은 명의에 가까왔는데 우리가 너무나도 잘아는 수양대군 즉 세조가 왕이 될 수 없었음에도 기회를 보다 반란을 통해서 왕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단종은 군권도 인사권도 판단권도 행할 수 없으며 예상하지 못한 계유정난은 백성들의 민심을 완전히 돌아버리게 하여 단종을 복귀시키라는 반발이 있었지만 단종에게 향한 마음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이었기에 수양의 행보에 단종은 그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1457년 강원도 영월에서 사사하였으며 기록상 사약을 받았다고 하지만 일부 교살의 가능성도 언급되며 영화는 이를 감독만의 생각과 애도로 표현하게 됩니다. 다만 단종은 끝까지 반란을 선동하지 않고 복위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죽음을 당한 비극적인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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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
엄흥도는 사실상 기록이 몇 없는 인물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충신으로만 기억됩니다. 하디만 그는 역사를 증언한 인물로서 단종은 공식적으로 역적으로 처리되어서 시신이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흥도는 정치적으로도 생존이 안정되지 못했는데 당시 단종에게 호의를 베풀면 3대가 멸할 정도의 압박이 있었지만 단종을 끝까지 보좌하며 왕권을 회복시키거나 반란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 단종의 역사를 보존한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종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살아갔지만 그의 기록은 많지 않으며 죽음조차 기록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자연사로 추측이 되고 있으며 숙청이나 유배의 기록없이 사실상 도망치듯 살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 엄흥도는 현재 단종과 함께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한명회
세조 집권을 설계한 핵심 인물로 실제 한명회는 유지태 배우처럼 키도 크고 덩치도 상당했다고 하며 단종이후 예종, 성종까지 모시고 살아남은 실권자로서 안정성을 중시하면서 권력과 정통을 가진 인물입니다.
작품에서는 반란의 주도적 인물로 나타나지만 역사에서는 혼란으로 가득한 조선을 빠르게 안정시켰으며 왕권 중심 체제를 다시 세웠고 성종 대의 태평성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나이가 들어 자연사 하였으며 제조의 집권을 실질적으로 완성하며 관객분들에게는 화가 나게도 살아생전 그는 정치적으로도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다만 연산군 때 폐비 윤씨 사건으로 불리는 갑자사화로 인하여 무덤에서 꺼내져 목이 잘리는 부관참시가 그의 마지막 최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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