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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3일 화요일

영화 '시라트' 해석 후기 삶의 지옥 살아남은 것에 대한 목적 없는 여정들

 영화 시라트


시라트



사후세계에서 지옥 위에 놓인 머리카락 처럼 가늘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다리를 뜻하는 영화의 제목 시라트는 모든 인간들이 죽은 뒤에 다리를 건너게 되고 선한자는 무사히 건너 천국으로 가지만 죄가 많은 자는 떨어져서 지옥으로 간다고 전해집니다.



영화 시라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물음은 그래서 왜 죽었고 왜 살았는가 입니다. 극단적인 서스펜스 같으면서도 너무나도 잔혹한 현실성이 다큐멘터리 처럼 느껴지는 영화 시라트는 체험과 같은 경험을 선사하며 불명확한 관계성과 목적성에 음악을 더하여 관객을 불안하게 합니다. 


불특정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영화 시라트는 러닝타임 1시간이 지나서야 그 충격이 시작됩니다. 영화의 후반부 우리의 삶에 대한 생각을 이 영화만으로 알 수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최종 목적지, 삶의 의지가 없는 이들이 살아남은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 되었고 목적을 가진자 용감하게 나아가려는 자들은 모두 죽음으로서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3차 세계 대전이고 목적 없는 이들의 더 이상의 삶을 연명하려고 하지 않은 순간 그들은 살기 시작했고 어쩌면 그것 자체가 이미 지옥을 걷고 있는 것 처럼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삶을 포기한 자들이 아닌 그저 주어진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이 철로위에 서 있으며심판은 죄를 묻는 것이 존재를 묻지 않습니다. 결국 세계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들이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운드


영화의 사운드가 굉장히 풍부한데 이미 해외에서도 극찬과 함께 수상을 하기도 했으며 낮은 주파수와 모호한 경계가 약에 취한듯 하고 이것이 불편하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결국 음악이 멈추면 사건이 시작되는 방식으로 이는 우리의 삶 자체가 많은 소음들에 둘러 싸여 있고 이것이 불편하면서도 계속해서 삶을 연장시킨다는 방면으로 본다면 음악을 찾아 떠나는 이들과 그저 음악을 듣는 자들로 구분하여 볼 때 누가 죽고 누가 살았는지를 알 수 있겠습니다. 




시라트 해석


영화는 어디론가 향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것이 상실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나씩 포기하게 되는 혹은 희미해지게 되는 것으로 남은 것은 오직 감각임을 알게 됩니다,

시라트를 건너간 이들은 천국으로 가게 된다면 이미 죄를 지은자는 지옥으로 가는 것이 정해져 있고 영화는 애초에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가 정해져 있을 ㅓㅅ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여 영화의 엔딩 그들의 삶이 지옥이라면 죽은 자들이 천국으로 갔다면 시라트라는 다리 위해서 목적을 가진 이들은 죽음으로서 지옥을 벗어났다는 역설을 가정한다면 우리는 또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가 명확해지게 됩니다.

삶의 목적


우리는 모두 꿈을 꿉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무의미함은 극악의 고통이 됩니다. 그렇게 사회가 만들고 종교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인간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소유하지 말고 그저 살아가는데로 살아라는 신의 말이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시라트는 연옥에서 지옥으로 가는 자들의 이야기일까요?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자들의 이야기 일까요?


지금 우리는 모두 시라트에 서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끝없이 죽을 뻔한 주인공의 입장에서 나를 살려주는 것은 내 의지도 목적도 아닌 타인의 손길이었습니다


타인의 목소리 타인의 손길이 아들을 따라 내려가려는 자신을 붙잡고 한가운데 쓰러지는 자신을 도와주며 지뢰 밭길을 함께 나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살아가야 할까요?


영화 시라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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