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인생 영화로 뽑히는 이터널 선샤인에 대해서 해석의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현재 2026년 다시 한 번 재개봉을 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추운 겨울 설렘을 가져오고 있는에 스포일러 가득한 해석의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이터널 선샤인
기억
영화에서 주인공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 기억을 지우는 능동적인 선택 달리말하면 회피를 택하게 됩니다. 기억은 자아룰 구성하는 요소이며 기억이 곧 인간의 본질이라는 동일성을 가지면서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기억을 삭제한 인물은 모습은 같아도 다른 성향이나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며 반복되는 운동을 거듭함으로서 욕망의 방향은 여전히 일치함을 보여줍니다.
사라진 기억 속에서 남은 성향은 과거의 실패를 단정지어주는 예시로 작용하며 고통은 곧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어야 한다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저항
조엘은 사라지는 기억에서 저항합니다. 초라한 순간이라도 붙잡고 싶어 합니다. 사랑은 실패와 후회였지만 그것 모두 사랑으로 정의 됩니다. 대부분 그 속에서 행복을 보려고 하지만 조엘은 회피하려하고 침묵하게 됩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삶에 대해서 뒤늦게 자극하여 후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게 됩니다. 기억과 추억 속에서의 책임을 어떻게 마주되며 반복 되는 순환에서 회피하지 않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이터널 선샤인 해석
영화는 기억의 삭제가 뒤에서부터 앞으로 시작됩니다. 즉 최근 기억부터 역순으로
삭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억의 삭제
이는 실제로 뇌 과학에서 해마 그리고 대뇌피질로 이동하며 장기 기억으로 저장이 되는데 최근 기억일 수록 오히려 더 불안정하다고 합니다.
오래 된 기억은 여러 신경망에 분산이 되어 최근 기억이 먼저 사라지는 것이며 당장에는 고통스러운 감정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은 행복한 기억들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재회를 꿈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오래되고 순수한 기억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곡의 기억
다만 기억은 영상이 아닌 감각과 감정, 맥락이 흩어진 퍼즐로서 빈부분은 여백이 되고 이것을 채우기 위해서 기억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는 행동과 기억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억은 자아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기에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여러번 할 수 있고 여전히 성향이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그래도 해보자"라는 말은 무책임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터널 선샤인은 후회이자 기억 그리고 사랑이자 공포라는 순환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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